1. 중앙은행 보고 돈을 찍어내라는 유럽

2. 채훈아빠님의 글에 대한 반론 

3. 채훈아빠님의 글에 대한 반론 2

4. 채훈아빠님의 답변 글에 대한 재반론

5. 인플레이션에 대한 오해

6. 화폐전쟁 쑹훙빙의 착각

7. 국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8.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9. 하이퍼 인플레는 인플레가 아니다.

10. 중앙은행에 대한 오해 (불태화 개입에 대한 오해)

11. 크루그먼에 대한 오해

12. 경제 위기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톨스토이가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통해 암시(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했던 대답은 ‘사랑’입니다.

사람은 물질()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

대답에 동의가 되시는지요?

 

지난 글을 쓰기위해 인터넷서점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책에 관한 내용을 다시 훑어보던 독자의 서평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40438

 

내용을 보면, 글쓴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생 정도를 대상으로 독서토론을 지도하는 선생님이신 한데, 분이 내용 중에 다음 구절이 우선 눈길을 끕니다.

 

날카로운 아이들은 동화같은 이야기와 세상은 다르다는 이야기까지 꺼냈다.

아직 이런 책을 읽을 수준이 안 되는 녀석들도 있어 심심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동화같은 이야기와 세상은 다르다”는 아이의 말은 쉽게 말하면,

사람은 사랑이 아니라 물질() 살아가는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는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닙니다.

 

본인의 생각이라기 보다는 부모나 TV 통해서 보고 들은 얘기가 뇌리에 박힌 것이겠지요.

 

이어서 서평을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습니다.

 

아이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그리고 나는 바보처럼 사는 걸까, 권력이나 재물을 위해 사는 걸까.
그리고 나는 뭘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성실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나의 성실은 정말 국가 정책의 한켠을 디디고 선 관료제를 유지하는 일이 아닌지... 

요즘 회의감에 무기력해지는 스스로를 추스리기 어렵다.
그런 주제에 아이들의 독서토론을 듣고 있자니... 
어쭙잖은 어른인 내가 부끄러웠다

 

우선 스스로를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분이시니 아이들을 가르쳐주실 좋은 선생님이신 합니다.

아마도 ‘오만함’이 ‘선생님’에게는 최악의 자질이겠지요.

 

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고자 하시는 분이, 자신의 성실함에 대해 회의감에 빠지고 스스로 무기력한 느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동화같은 이야기와 세상은 다르다”는 아이의 말과 함께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선생님이 느끼는 회의감과 무기력함은 아마도 ‘어쩌면 아이의 말이 맞는 것이고 내가 바보일지도 몰라’ 하는 우려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동화같은 이야기와 세상은 다르다”고 하는 아이의 말은 정말 맞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대문호 톨스토이의 생각이 틀린 것일까요?

 

톨스토이의 생각이 맞는 것입니다. 그의 통찰이, 인간의 본성과 사회를 날카롭게 꿰뚫어본 것입니다. 그의 생각이 맞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읽히고 그가 대문호라고 추앙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생각되시나요?

 

대문호 톨스토이가 틀렸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만큼 지금 시대는 오만해졌습니다. 주식투자에 비유하자면 이격이 너무 커진 것입니다. 이격이 너무 커지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지요.

 

 

이제 다시

국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고자 합니다.

 

이에 대한 답은, 국민들을 잡아먹고 산다, 입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는,

외적의 침략이 있을 국가는 국민들에게 총을 들고 나가서 싸우다 죽으라고 명령합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나가 죽으라고 명령할 있는 이유는,

국가란 것이 따로 있지 않고 바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위해 내가 희생해야겠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안락을 희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극단적인 사례인 전쟁을 떠나 경제 문제로 돌아가서,

국가가 GDP 대비 100% 훌쩍 넘어서는 막중한 국가부채 부담을 이겨내고 살아날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역시 국민들을 잡아먹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때는 국민들의 일부분, 탐욕이라는 부분을 잡아먹습니다.

 

지난 글에서 설명드린 대공황 이후 미국의 국가부채 탈출 과정을 다시 보면,

 

20년짜리 장기국채에 투자한 뉴욕시민들이 희생당한 만큼 국채부담이 줄어든 것입니다. 연평균 3.93%였던 경제 성장률과 만기 20 동안 국채이자율 1.936% 차이가 낳은 복리효과 만큼 국채부담이 줄어든 것입니다.

 

경제가 고속성장함에 따라 금리가 상승하면, 그만큼 상승한 국채이자를 국채투자자가 가져가야 맞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채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데, 만기 20 동안 이자율 1.936%짜리 국채를 투자자들이 미리 가져갔기 때문에 국가가 그만큼 이익(국채 부담 감소)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국채부담 탈출이 인플레와 상관없는 것임을 있습니다. 만기 20년에 저리인 1.936% 라는 상태를 달성(디플레를 통해 달성합니다)하지 못하면, 아무리 인플레가 있어도 탈출하지 못하고, 반대로 이와 같은 상태를 달성하면 정상적인 경제성장만으로도 탈출이 가능합니다.

 

 

지난 글에서,

국가는 다양한 경제주체들을 모두 자기 안에 포괄하고 있으면서단기적인 탐욕에 따라 움직이며 서로 경쟁하는 여러 경제주체들 사이에서 거중조정하는 역할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국가는 부도가 없습니다.

부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가 부도가 난다고 해서 그리스라는 국가가 사라지고 그리스 국민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인들의 , 그리스라는 국가의 삶은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부도로 인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기업의 부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결국 국가는 어떤 문제라도 안에서 조정해낼 있습니다.

부도가 없기 때문에, 결국은 어떻게든지 해서 안에서 조정해낼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떻게’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국가가 날고 기는 정력적인 사업가들을, 결국은 요리해낼 있는 이유 역시 국가에는 부도가 없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습니다.

 

단기적인 탐욕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국가는 보다 시각에서, 경제주체들이 부리는 단기적인 탐욕을 이용할 있습니다.

 

국가는 탐욕이 없습니다. 잘못된 기득권층이 탐욕을 부리는 것이지 국가가 아닙니다. 부분 역시 오해 말아야 합니다.

 

100년도 살면서 1000년을 것처럼 욕심부리는 개별 경제주체들은 탐욕 때문에 국가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1000, 년의 삶을 이어가는 국가(정부나 왕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땅에 지는 5천년이 넘습니다) 개별 경제주체들이 부리는 탐욕을 잡아먹으며 살아갑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뉴욕시민들은 20년짜리 탐욕을 부린 셈입니다.

지금 땅의 우리들은 아파트를 가지고 40년짜리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도는 국가의 수명을 봤을 간단히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겨우 40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아파트 가격이 절대 무너질 없다고 오만한 자신감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이라는 시점은, 자산투자(주식·부동산) 대한 탐욕을 잡아먹는 과정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있고,

동시에 국채에 대한 탐욕을 잡아먹기 위한 준비 작업이 병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시간이 흘러 준비작업이 완료되고 나면 이를 잡아먹게 되겠지요.

 

 

지난 글에서,

‘조정자’ 역할이 국가의 가장  힘이며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를 제대로 잘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세계 모든 나라들이 역할을 제대로 해낼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받고 있습니다.  시험은 ‘역사’가 던진 도전입니다.

 

통상적으로는 국가가 충분히 해낼 있는 조정 역할이 깨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보통 기득권층의 잘못된 탐욕 때문에 빚어집니다.

 

유럽도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우리나라도 매우 중요한 시점에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 이래로 자본주의란 탐욕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조장하기 까지 합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잡아먹습니다.

 

“동화같은 이야기와 세상은 다르다”는 생각을 아이에게 심어준 어른들이 우리 사회에서 50% 넘을까요, 아니면

아직은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는 대답이 50% 넘을까요? 쪽이 정답일 것입니다.

하지만 통상 들려오는 목소리는 저쪽이 50% 넘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쪽이 잔뜩 주늑이 들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늑이 들어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저쪽이 50% 넘지 않는 것은 분명한데(그러면 사회의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계량화가 불가능하니 집어 얼마나 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많아진 것은 분명합니다. 아이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왔다는 사실로 이를 있습니다.

 

이처럼 탐욕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높아지면 이제 국가가 잡아먹을 때가 것입니다.

이격이 급격하게 축소되야할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Posted by sai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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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17 14:0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비밀댓글입니다
  2. 아빠까바
    2012.02.17 14:0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날이 밝은지 한참인데 눈을감고 아직도 밤이라고 우기며 꿈속을 헤메고 계신듯
    그것도 4년넘게 ...
  3. 2013.07.18 05:2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당신은 내가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예요,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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